TPO - 70년 전인 1954년 5월 7일, 우리 군대의 "싸움에 대한 결의, 승리에 대한 결의" 깃발이 드 카스트리스 장군의 사령부 벙커 지붕에 게양되어 디엔비엔푸 전투의 완승을 알렸습니다. 이는 우리 군대와 국민이 56일 밤낮으로 끈기 있고 용감하며 창조적인 싸움을 벌인 결과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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A1 기지에서 무옹탄 다리를 건너면 드 캐스트리스 터널에 도착합니다. 이 벙커는 당시 가장 튼튼한 재료로 설계되고 건설되어 다양한 종류의 화력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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터널의 지붕은 아치형 강철판으로 덮여 있고, 그 아래에는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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승전 70주년 - 3부: 파딘 - 어깨에 메고 다니는 여인, 짐꾼" href="https://tienphong.vn/post-1629523.tpo">드 카스트리스의 벙커는 길이 20m, 너비 8m이며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. 이곳은 드 카스트리스 장군의 근무지이자 휴식처이며, 디엔비엔푸 거점군의 사령관이기도 합니다. 디엔비엔푸 전투 승전 70주년을 맞아 패배한 장군의 벙커는 많은 국내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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드 카스트리스 벙커는 본부였기 때문에 견고한 요새로 지어졌습니다. 이 벙커는 디엔비엔푸 요새의 "심장"이자 "영혼"으로 여겨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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터널 주변에는 빽빽한 철조망이 있는 방어용 울타리가 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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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다가 드 카스트리스 벙커는 당시 가장 현대적인 무기와 전쟁 장비로 보호받고 있었습니다. 사진에 나온 것은 지휘소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벙커 주변에 배치된 4대의 프랑스 방어전차 중 하나입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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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날에도 지하실의 구조와 배치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. 그림은 드 카스트리스 장군의 철제 책상입니다. 이 벙커에서 드 카스트리스 장군은 프랑스 총리 조셉 라니엘, 미국 대통령, 국제 언론인 등 많은 고위 관료들을 접견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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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4년 5월 7일 오후 5시 30분, 312사단 209연대 360중대 사령관인 타 꾸옥 루앗 씨는 사령부 벙커에 있는 그의 책상에서 드 캐스트리스 장군을 살아있는 채로 붙잡았습니다. 드 캐스트리스 장군과 그의 수행원 20명은 무조건 항복하고 베트남군 병사들의 총열 두 개 사이로 벙커에서 나왔습니다. 사진: VNA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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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6일 밤낮으로 끈기 있고 용감하며 창조적인 싸움을 벌인 끝에 우리 군대와 국민은 "5대주에 울려 퍼지고 전 세계를 뒤흔든" 디엔비엔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. 이 승리는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제네바 협정의 체결로 이어졌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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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치민 대통령은 "디엔비엔푸 승리는 역사상 황금기의 이정표"라고 단언했습니다. 사진은 디엔비엔푸 역사승리박물관에서 디엔비엔푸 전역의 파노라마 사진으로, 드 카스트리스 장군이 벙커에서 끌려나오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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디엔비엔푸 유적은 국가 특별 역사 유물로 지정되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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